6월의 바람이 분다.
누군가는 그것을 초여름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장미의 계절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바람 속에 백 년 넘게 지워지지 않는 이름들이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동탄의 들녘에 봄볕이 내리던 날이었다.
한 청년이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작은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한 사람의 떨림은 논두렁을 건너고 마을을 건너 송산과 남양을 지나 장안과 우정으로 번져 갔다.
함성은 강보다 멀리 흘렀고, 들불보다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 꽃보다 먼저 피를 기억한다.
제암리 교회의 문이 닫히고 고주리의 저녁이 붉게 물들 때, 누군가는 마지막 기도를 드렸고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었다.
그날 쓰러진 사람들은 한 번도 대한민국을 가져 본 적이 없었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죽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렀다.
광복이 오고 새 나라가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제 평화를 노래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유는 한 번 얻었다고 영원히 머무는 새가 아니었다.
1950년 6월.
전쟁이 새벽을 깨웠다.
화성의 젊은이들은 논을 갈던 손으로 총을 들고, 학교에 가던 발걸음으로 전선으로 향했다.
낙동강 물빛에도, 백마고지의 바람에도, 고향의 이름을 품은 청춘들이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이도 있었고, 평생 전쟁을 가슴에 안고 산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사람들과, 그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그들의 삶은 달랐지만 그들이 바라본 하늘은 하나였다.
태극기였다.
그래서 6월이 오면 나는 태극기를 다시 바라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천 조각이 아니라 동탄의 함성이고, 제암리의 기도이며, 백마고지의 젊은 날들이다.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서 바람으로 걷고 있기 때문이다.
6월의 태극기 아래 서면 나는 묻는다.
우리는 지금 그들이 남긴 자유만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그 자유를 다음 세대에게 건네기 위해 함께 걷고 있는가.
초여름 하늘 높이 태극기가 펄럭인다.
그 깃발은 오늘도 순국선열의 이름으로 오르고, 참전용사의 눈물로 빛난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기억하라.
자유는 언제나 누군가의 사랑으로 지켜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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