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누구일까?’. 소설 “고라니 사냥꾼”.. 3회(연재 1-18회)엄마!, 아침밥 먹고 가 (1차 살인), 피해자들을 꼭 죽여야만 했을까?
|
![]() © ◆ 작가 : 박 윤 남, 아호 백송(白松), 출생, 경기도 화성시 삼괴 반도,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원예과 졸업, ▲수원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수원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
【화성인터넷신문】1980년대 말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은 수많은 의문을 남긴 채 오랜 세월 미제로 남아 있었다. 이후 범인이 밝혀졌지만, 수사 과정, 그리고 범행의 동기와 심리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본지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죄의 본질과 인간 심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추리소설 「고라니 사냥꾼」을 연재한다.
이번 작품은 이미 공개된 사건 자료와 당시 사회적 배경,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창작 추리소설이다. 독자들과 함께 ‘왜 그런 비극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나누기 위한 문학적 시도이다. 앞으로 총 18회에 걸쳐 연재될 「고라니 사냥꾼」이 사건 이면의 시대상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본지는 "본 작품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창작 소설이며 일부 내용은 작가의 상상과 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3. 엄마!, 아침밥 먹고 가 (1차 살인사건)
|
사 건 일 자 (1차) |
발 견 장 소 |
피 해 자 |
|
1986년 9월 14일 일요일 22시 발견:1986년 9월 19일 14시 |
태산읍 영안리, 옥수수 밭 |
이은임 71세 |
[사회생활의 출발]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아이고 춘삼이는 인사성도 밝아”
마을 입구에 있는 슈퍼 앞에 40~50대쯤으로 보이는 동네 아저씨들 4~5명이 평상에 앉아서막걸리를 걸고 내기 장기를 두고 있다.
슈퍼에서 평상 방향으로 틀어져 있는 TV에서는 86아시안게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바로 선진국이 될 것처럼 떠들어 대고 아시안게임에 참가를 위해 각국 선수단이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는 장면들을 내보내고 있었는데 그날은 86아시안게임 개최를 정확히 1주일을 남겨 둔 일요일이었다.
아시안게임이 경제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춘삼이 다니고 있는 회사도 연일 밤늦게까지 잔업을 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회사 직원들과 소주 한잔을 마실 시간이 없어서, 일주일에 겨우 하루밖에제대로 된 휴식이 없는 일요일 저녁에 같은 조의 총각들을 중심으로 시간이 되는 4~5명이 모여서회사 근처의 삼겹살집에서 단합행사라는 거창한 핑계를 대고 소주를 마시기로 하였다.
모처럼 찾아온 일요일이라 점심때까지 늦잠을 자고 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그동안 잔업으로 못 본 TV 연속극의 재방송을 몇 편 보고 나니 술을 마시기로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어 간다.
회사가 있는 남정면까지 가는 버스는 대략 한 시간에 한 대 정도씩 운행을 하여 한번 버스를놓치면 50분 정도는 걸어서 가야 해서 버스가 도착하기 최소 5분이나10분 전쯤 버스 정류장에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 것이 이제는 생활화가 되었다.
정해진 버스 시간은 있지만, 버스의 도착 시간은 운전기사 맘대로라 정해진 시간보다 5분일찍 도착하거나 5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도 버스 기사에게 항의할 수 없는 분위기라 오로지 그날의 운에 맡겨야 한다.
마침내 식당에 도착하자 조장은 약속을 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왔는지 삼겹살을시켜 구우며 소주 첫 잔을 마시려다가 춘삼을 보자 이내 멈추고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하였다.
“어서 와요, 춘삼씨!”
춘삼이 조장에게 ‘말씀을 낮추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였으나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유교국가에서는 “후배여도 먼저 술 한잔을 나눈 후에 나 반말이 가능하다.”라며양반 흉내를 내고 있다.
옛말에 ‘어른이 되려면 3가지(홍역, 병역, 혼인)를 겪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조장은절반을 넘어 2/3 격인 홍역과 병역을 마친 춘삼을 어느 정도 어른 대접을 해주려고하였다.
조장이 약속 장소를 회사 근처로 정한 것은, 사방팔방 퍼져서 살고 있는 같은 조원들의 중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 근처 식당에서 만나는 것이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았다.
회사 근처의 식당은 단골이라는 의미로 서비스가 좋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상보다식대가 많이 나와도 언제나 외상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술자리가 조금씩 익어갈 무렵, 오후 7시쯤 되자 갑자기 아나운서가 등장하여 ‘KBS 뉴스 속보’라며 오늘(9/14) 오후 3시 10분경, 김포공항에서 북괴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가 발생하여 사망 5명에 부상 29명으로 총 3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음을 알렸다.
1차 경찰의 수사 결과는 지난 83년에 버마 랭군의 아웅산 폭발 사건 및 대구 미문화원 폭발 사건 때 사용한 것과 같은 폭발물인 씨퍼(C-4) 폭탄을 사용하였고 범행 수법이 비슷한것으로 보아 북괴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갑자기 발생한 ‘김포공항 테러 사건’으로 술자리에 안주가 하나 더 늘어나는데, 그것은 군대 얘기로 춘삼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원들은 모두 지역방위 출신이라 춘삼은 자신이육군의 제1기갑여단, 1대대, 1분대 조종수 출신이라며 자랑질하였다.
“내가 몰던 엠 사십팔(M-48) 탱크가 움직이면, 대한민국의 전차와 보병들이 줄을 맞추어 내 뒤를 따라옵니다.”
춘삼은 자신이 고등학교를 나온 수성시나 태어난 서해군에서 고졸 출신이 지역방위가아닌 정규 군대를 다녀온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그것도 베레모에 권총을 차고 근무하는 전차부대 출신임은 자신의 이력 중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아뿔싸!
춘삼은 간만의 술자리 분위기에 자신의 군대 얘기를 정신없이 하는 도중 식당 앞의버스 정류장을 통과하는 버스를 불과 2~3분 차이로 놓치게 되었다.
다음 막차를 기다리려면 보통 1시간은 기다려야 하고, 뛰지 않고 걸어만 가도 집까지대략 50분 내외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고, 반쯤을 걸어가면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걸어 다녔던추억이 담긴 익숙한 길이라 차라리 술을 좀 깰 겸 그냥 걸어가기로 하였다.
유부남인 조장이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유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춘삼이 앞으로 진행될회사 생활에서 좀 더 편해지기 위해서 스스로 신고식을 한다는 기분도 들어 얼떨결에 객기를부리며 월급을 털어 술값을 모두 혼자서 계산하고 말았다.
초가을 저녁의 선선한 날씨 때문인지 귀가하는 발걸음은 한층 가볍게 느껴지는데 다음 정류장이 가까워질 무렵에 저 멀리서 아주머니 같은 사람이 머리에 제법 부피가 있어보이는 보따리를 이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춘삼이 살고 있던 동네는 태산 읍내로 불리지만 작년에 면 단위에서 읍으로 승격하여 인구가겨우 2만밖에 안 되는 아직은 사실상 시골 마을이나 진배없다.
태산 읍내의 특징으로, 기차역이 하나 있는데 모든 역에서 정차한다는 비둘기호만 간간이서다 가는 곳으로 점병 역전 주변을 제외하면 그나마 길가에 가로등도 별로 없고 특히밤 9시 이후에는 거리를 통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모습이다.
춘삼이 정류장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자, 아주머니가 머리에 이고 있는 마대자루에서 매콤한 물고추 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서해군 태산읍은 수성시와 동일한 생활권이라 소작농을 하는 농민들이 평일에는 농사를 짓고 주말을 이용하여 수성시 소재 남문시장이나 역전시장의 노상에서 스스로 재배한농산물을 직접 팔아서 용돈으로 쏠쏠하게 쓰고 있다.
춘삼이 어둠을 뚫고 나타난 아줌마의 행색을 보아하니 농사지은 물고추를 시장에 내어 팔다가 조금 남아서 집으로 다시 가져온 후 햇볕에 말려서 마른 고추가 되면 1~2주 후에다시 시장에 내어다 팔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게 웬 떡이냐?’
조금 전에 기갑부대 출신임을 강조하며 비행기를 때워주는 것에 넘어가서 얼떨결에 삼겹살과소줏값을 모두 혼자서 내고 나서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성급한 성격을 후회하고 있었다.
재수가 좋으면 낮에 시장에 가서 채소 등을 팔고 번 돈이 최소한 몇 만 원에 많게는십여만 원 정도는 될 것 같았고 방금 얼큰하게 술을 마신 상태라 아랫도리가도와 달라고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냥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걸어가다 가까이 다가서자, 안주머니에 있던칼을 꺼내어 들고 왼손은 어느새 그녀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처음에는 깜깜한 밤길에 혹시나 강도라도 만날까 걱정이 되어 스스로 위안 삼고자군대서 쓰던 접이식인 잭나이프를 챙겨서 가지고 다녔다.
마치 먹잇감의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미처럼 칼날을 눈앞에 가까이 보여 주었다가 이내그녀의 옆구리에 마치 찌르겠다는 기세로 위협을 하면서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소곤대었다.
“소리치면 죽인다. 따라와, 이년아!”
은빛 칼날에 놀라 얼어붙은 그녀를 길가에서 100m쯤 떨어져 있던 옥수수와목초가 자라고 있는 밭쪽으로 끌고 가는데 그 여인은 농민에겐 자식과 같은 농산물인 고추가 들어 있는 마대자루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잡고 끌려왔다.
공포감에 떨고 있던 그녀를 완전히 제압하려고 군대에서 30개월 동안 태권도로 단련된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펴서 갈비뼈 아래인 명치를 세게 쳐버리자 마치 송곳으로 급소를 찔린것처럼 온몸에 힘이 쭉 빠졌는지 스르르 주저앉았다.
놀라서 긴장감에 다리가 풀렸는지 아니면 명치를 맞았던 충격 때문인지 머리에 이고 있던마대가 땅으로 떨어지면서 빨간 고추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만 빼앗으려 하였으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할 확실한 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기절해서 목초 위에 드러누운 그녀의 치마와 속옷을벗기고 자신의 물건을 꺼내 막 삽입을 시도하려는 순간 그녀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발길질하며 진입을 못 하도록 강력하게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너는 네 할미도 따 먹냐, 이 나쁜 놈아!”
“아니, 씨팔 할미이면 할 만큼 해 본 것 아니야, 한강에 배가 지나간다고 표시 나는것도 아닐 텐데 그냥 한 번만 주시지”
춘삼은 성 경험이 비교적 많은 아줌마나 할머니는 경험이 없거나 적은 아가씨들보다상대적으로 몸을 잘 대줄지 알았다. 하지만 더 격렬하게 반항하는 것에 순간적으로 당황하였는데 두 손으로 고쟁이를 움켜잡고는 마치 팬티에 목숨이라도 걸었는지 벗기지 못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아니 지금까지 따 먹어본 계집들은 번쩍거리는 칼날을 두 눈앞에 보여 만 주어도 모두 순순히 알아서 빤스(팬티)를 벗거나 벗기는 것을 묵인해 주었는데 말이야.’ 아주 많이 해 본 아줌마나 할 만큼 해 본 할미가 상대적으로 처음 해 보는 처녀들보다는더 잘 줄 것이라는 생각이 철저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욕정도 욕정이지만 돈만 뺏고 그냥 돌려보내면 훗날 경찰에 신고할 것이 뻔하고 신고 후가염려되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입막음하려고 강간을 시도한 것인데 이렇게 목숨 걸고 결사적으로 반항할 줄 춘삼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할미의 입장은 어렸을 때부터 병자호란 때 몽골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화냥년(환향녀) 얘기와 일제 강점기 때 강제로 끌려갔다 돌아온 ‘정신대’ 출신 여성들의 비참한 얘기를 자신이 두 귀가 아프도록 들었고 먹고살기 위해 6.25 한국전쟁 이후 미군에게 몸을 팔았던 ‘양갈보’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조’라는 여성에게만 채어진 굴레가 그것을 잃었을 때 강제 또는 불가피하게당하였어도 그 후에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넘어서 수군수군하는 비난의 강도가 너무나 모욕적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발길질을 못 하게 그녀의 다리를 엑스(X)자로 꼬아서 자신의 배로 위에서 누르며그곳에 삽입을 시도하자 그녀는 더욱 반항하며 큰소리를 질러댔다.
“사람 살려, 사람”
입을 막으려던 춘삼의 두 손이 짧아서인지 아니면 당황해서인지 입을 막으려던 손이 이내그녀의 목을 조르게 되자 따듯하고 물컹한 모가지의 촉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듯 반항하며 꿈틀대는 순간, 제대하던 날 수성역 맞은편에 있는 창녀촌에서 몸싸움 때 목을 졸라 봤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두 손으로 목을 더욱 힘차게조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멍을 때리던 춘삼은 주변의 고요함에 놀라 정신을 차리고 목을 조르던 손을 놓으며낮고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흔들었다.
“아줌마, 아니 할미 정신 차려 봐, 정신을”
춘삼은 그녀의 축 늘어진 두 팔을 바라보면서 이미 숨이 멈추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고그녀가 이제는 시체로 바뀌었다는 생각에 벌컥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벌떡 일어나 본인의 바지를 대충 수습하고 그녀의 옆에 놓여있던 돈이 들어 있는 전대를 집어 들고 집을 향해 마구 뛰었는데 밤이 늦어서인지 다행히도 길바닥에서 마주친 사람은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골방으로 들어갔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살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벌여왔던 강간 사건과 전혀 다른 차원의 범죄라는 것을 굳이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백정들도 소나 돼지를 잡고 나서는 맘이 편치 않아 도축이 끝나면 술을 한잔하면서희생당한 그들에게 미안함을 달랬다는 얘기가 있는데 짐승도 아닌 사람을 잡았으니,춘삼은 마치 본인이 대포라도 한 대 맞은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프고 이제 자신의 인생도모두 끝장이 났다는 절망감이 몰려왔다.
“경찰에 신고하면 시집은 다 갔는지 알아, 나만 전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도 강간당한전과자가 되는 거야”
그동안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비교적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겁을 주며 강간에재미를 느끼다가 오늘은 드디어 우발적이지만 처음으로 살인하게 되었다.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라고 하였는데 소도둑을 넘어서 ‘이제는 살인자’가 되었다.
‘만일 잡힌다면 사형이나 아니면 무기징역인데’,
‘먼저 자수할 것인가 아니면 체포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회사에 출근해서도 도저히 결론을 못 내리고 하루 종일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어디 아프냐고 묻기 시작하자 춘삼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피곤하다며 얼버무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고 했던가?,
다음날부터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한 뒷소문을 듣기 위해 두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읍내를 조심스럽게 돌아다녀 봤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별다른 소란도 없이 조용히 넘어갔고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무사히 넘어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3일째 되는 날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고 어느덧 추석 연휴 3일째 되는 날이며 사건 발생 후 1주일이 가까워질 무렵에 서해경찰서로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 온다.
신고한 유 모씨(28세)의 전화를 받고 즉시 출동한 형사들은 오후 2시경쯤 사건 현장에 도착하자 옥수숫대 사이의 풀 속에 약 70세 전후로 보이는 할머니가 하의는 벗겨진채 다리는 X자 모양으로 접혀서 복부에 밀착시켜 놓은 상태로 반드시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벗겨진 하의와 시신의 독특한 자세로 미루어 볼 때 처음에는 성폭행당한 피해자일가능성이 높았지만, 부검 결과 정액 반응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사체는 엔실리지용(발효 사료) 옥수숫대를 키우는 밭의 우거진 풀들 사이에 누워있었는데 추석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려고 나온 목장 주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형사들은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사건 발생 후 5일 만에 사체가 발견되었고 그동안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초가을이라 아침마다 이슬이 내려서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여범인을 특정할 만한 지문, 족적, 범행에 사용했을 만한 흉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피해자가 신고 있던 고무신과 양말들이 현장 주변에 흩어져 있었는데 경찰의연락을 받고 급하게 현장에 달려온 피해자의 딸은, “흐흐흑, 저희 엄마가 맞아요, 그날 아침밥만 먹고 출발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울먹였다.
사체가 발견된 다음 날에 진행된 딸의 진술에 의하면, 어머니 이은임 할머니는 사망전날 남정면에 있는 자신의 밭에서 수확한 열무 7단과 고추 5근을 팔기 위해 수성시의 남문시장을향해 장사하러 갔다.
열무는 모두 팔렸지만, 마지막까지 고추 한 근은 끝내 팔리지 않아서 다시 가지고 저녁 늦게 집을 향해 버스를 타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집이 있는 남정면까지 가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배는 고픈데 집엔 찬밥도 남아 있지않아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가는 방향의 중간쯤에 있는 동네로 시집간 딸의 집인태산읍 영안리를 찾아가서 저녁을 얻어먹으려 잠시 들렸다.
저녁을 먹고 나자 ‘밤이 늦었다고 잠을 자고 가시라’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서 건넛방에 짐을 풀고 누웠는데도 농사철의 농민들 마음이 그러하듯 다음 날 새벽부터 시작할 농사일이걱정되기 시작하였다.
팔다 남은 물고추를 마대자루에 그대로 놔두면 혹시 곯아 버릴 수 있어서 멍석에 펼쳐 널어놓아야 할 것 같고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해가 중천에 떠 있을 것이 분명하고 고추 수확 때문에 밀어 놓았던 김장 배추밭에 있는 잡초들을 빨리 뽑아줘야 배추와 무가 튼실하게 자랄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 시계를 살펴보니 막차 버스 시간이 아직 20분이나 남아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방문 밖으로 나와서 딸에게 인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딸이 자고 가라고 한사코만류할 것이 뻔해서 그냥 조용히 딸의 집을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딸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아침 7시쯤에 아침밥을 먹고 가라고 엄마를 깨우러 건넌방에 갔을 때는 이미 이불은 개어져 있고 엄마는 안 보여서, ‘초가을에는 일거리가 많다’라는 것을 딸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첫차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향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딸은 엄마에게 그동안 별다른 연락이 없어서 집에 잘 도착하여 생활하고 있을 것으로짐작하고 있었는데, 경찰서에서 엄마가 숨졌다는 연락이 오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받고 쓰러졌다.
사체가 발견된 곳은 딸의 집에서는 걸어서 불과 5분 정도 거리이자 피해자의 집인남정면까지는 도보로 30~40분쯤 떨어진 곳이었다.
경찰은 시내버스가 딸이 살고 있던 동네 바로 앞까지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걸어가다 이른 새벽에 음주 운전이나 무면허 운전자에게 교통사고를 당한후에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뺑소니차의 운전자가 사체를 옥수수밭으로 옮겨서 유기한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훗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사인은 목을 졸라 죽인 교살이었으며 현장 주변에버려져 있던 피해자의 양말을 검사한 결과 피해자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가해자로 추정되는남성의 정액은 검출되지 않았으며, 질 내에서도 어떠한 정액 반응도 나오지 않자, 성폭행은없었던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사건 당시만 해도 휴대용 화장지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 성폭행 뒤처리를 위해 종종손수건이나 양말이 사용되었다.
다 팔지 못해서 다시 가져왔던 물고추 한 근은 당시 참혹했던 범행 현장을 대변이라도 해주는 듯 사체의 주변에 마구 흩어져 있었다.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담배꽁초를 발견하였지만 1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서 이슬에 젖고마르기를 반복하여 범인에 대한 정보를 찾아낼 수 없었고 현장이나 시신에서 범인의모발이나 체모 등 추가 증거를 찾아내는 것에 실패하였다.
전날 남문시장에서 물고추와 열무를 팔고 받은 시골에서는 비교적 거액으로 추정되는 돈의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져서 형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늘 그랬던 것처럼 사체 발견 다음 날부터 관할지서인 태산지서에임시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는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86아시안게임이 시작되는첫날이었다.
한편, 경찰기동대에서 6개월 근무 후에 첫 부임을 받은 이파리 두 개짜리 순경 계급장을 보면서 태산지서장은 본인의 초임 때가 생각이 났는지 아니면 사건 해결에 걱정이 되었는지한마디 거들고 있다.
“아니, 경찰로 입문한 지 이제 1년도 안 된 초짜를 붙여주고”,
“뺑소니 살인범을 잡으라고 하는 것은 차라리 소에게 뒷걸음을 치다.”,
“쥐를 잡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야?”
정년 퇴임을 1년 정도 남겨 둔 지서장이 놀려대자, 임희일 반장도 경험이 없는 초임 순경을보며 자신의 앞날이 걱정되는 듯 답답함을 토로한다.
“임 반장!, 동네 양아치 명단이야 몇 명 잡아다가 몇 대씩 두들겨 패면”,
“곧 범인이 잡히겠지. 여기 순서대로 잡아들여 봐”
명단을 넘긴 지서장은 이미 본인이 범인을 잡아준 것처럼 목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본 사건에서 ‘속단은 금물’이라는 초동수사의 기본 원칙이 깨지면서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는계기가 되는데 출발점부터 초점이 흔들리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중간에 수정하기가어렵다는 평범한 진리가 확인되는 시점이다.
수사를 시작한 형사들은 처음에는 국과수의 부검 결과 사인이 교살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정액이나 성폭행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서 강간 살인보다는 뺑소니 범인이교통사고를 낸 후 피해자가 혹시 살아날까 봐 확인 사살차 교살한 것 정도로 안일하게 취급하였다.
태산읍 지역의 양아치들이나 전과자들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차를 몰고 귀가하다가 음주운전 사고 후 범행 은폐를 위해 강간 후에 살인으로 보이게 일부러 하의를 벗긴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근거로 탐문 수사를 진행하였지만, 막상 목격자를 확보하는 것에 실패하였다.
“김병희 형사, 동네 양아치들을 조사한 것은 어떻게 되었어?”
임 반장의 질문에 최근 양아치들과 전과자들을 찾아가 탐문 수사한 내용을 간략히보고한다.
“동네 양아치들은 비록 야행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통상 늦은 밤이나 새벽 한두 시쯤에 귀가하여 대부분 대낮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점을 먹기 때문에 첫차가 움직이는 이른 새벽에는 잘 활동하지 않습니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수사는 점차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동광 형사, 빨리 범인을 잡고 다방에 앉아서 편하게 아시안게임을 구경해야지”,
“앞으로 3일 안에 잡아서 와봐”
그때까지만 하여도 본 사건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장기 미제사건으로진행될 것이라고는 그 어느 곳의 누구 든 꿈에도 몰랐다.
당시 본 연쇄 살인 사건의 첫 범행 발생 당시 경찰의 상황은 특히 수도권의 경찰 대부분이필수 인원을 제외하고는 당시 국가적 행사였던 86서울아시안게임(9월 20일 ~ 10월 5일)과관련하여 대부분 서울 시내로 차출되었다.
경찰은 서울의 방범 준비와 데모 저지 등 치안 유지를 위해 대부분 동원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음주 사고 후 뺑소니 살인사건으로 추정되고 있던 본사건에 신경 쓸 겨를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1차 연쇄 살인 사건 현장에는, 단 3명의 경찰관만 파견되었고 수사 초기에는 질 내에서정액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행을 위장한 단순 뺑소니 교통사고로 분류되어 지역의언론에서도 전혀 관심을 끌지 않았다.
당시 군사 정권은 1981년에 아시아경기연맹 총회에서 서울이 86아시안게임 개최지로 확정되자 슬로건을 "영원한 전진"으로 정하여 행사 준비를 하였고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국가 차원에서 아시안게임을 통해 ‘대회 운영 기술 및 경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86아시안게임은 2년 뒤에 열리는 88서울올림픽대회가 ‘단군 이후 최대 행사’로 불리며아시안게임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밑거름으로 만들었지만,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치안 문제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자수할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내던 춘삼에게 크나큰 희소식들이 들려왔다.
수사본부가 설치된 태산지서에 끌려가서 조사받고 나온 일명 동네 양아치로 불리던 선후배들을통해서 수사본부에서 조사받았던 내용이 하나둘씩 소문 형식으로 조금씩밖에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사건 발생 시간이 범죄가 발생한 일요일 오후 10시 전후가 아니라 다음날인 월요일의버스 첫차 시간인 6시 20분 전후로 특정되어 범인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으며피해자도 강간미수살인이 아닌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면서 동네 불량배와 특히 차량 소유자를 중심으로 조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 이게 뭐지? 뭐 하는 거지? 병신들! 그게 아니지, 하하. 이젠 살았다!”
사망 시간이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의 아침 6시 20분쯤이라면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일어난 엄니가 출근 준비를 하라고 자신을 깨운 시간과 비슷하여 알리바이가 완벽하고 특히 공돌이 생활 원년인 춘삼에게 그 비싼 자가용차가 있을 가능성은 전무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은 이미 살인사건의 수사망에서 멀어도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고 확인되는 순간 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인간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과 불안감도 자신이 수사망에서멀어지자 조금씩 그리고 멀리멀리 떠내려가는 것 같았고 그동안 한숨 졸이며 살아왔던 것이 오히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4, 2차 살인>

![]() |
![]() |
![]() |
![]() |
![]() |
![]() |
![]() |
![]() |
![]() |
![]() |
![]() |
![]() |
![]() |
![]() |